서울 성수동의 한 건물 4층에 자리한 갤러리 까르찌나는 공간의 규모보다 먼저 그 정체성으로 관람객을 붙든다. 이곳은 스스로를 “국내 유일의 러시아 그림 전문 갤러리”로 소개한다. 모스크바를 기반으로 2019년 서울에 법인을 설립하고, 성수동에 상설전시장을 운영해온 갤러리 까르찌나는 러시아 현대 미술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드문 창구로 자리매김해왔다. 까르찌나는 현재 전시와 공간 정보를 명확하게 알리고 있으며, 갤러리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번역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는 인상을 준다.

까르찌나라는 이름은 러시아어로 ‘그림’을 뜻한다. 이름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방향성은 분명하다. 이 갤러리는 러시아 최고의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 한국에 소개하고, 동시에 한국 작가들의 러시아 전시도 주관한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갤러리 까르찌나는 한쪽의 미술을 일방적으로 들여오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권의 예술이 오가며 만나는 접점으로 스스로를 설정하고 있다. 미술이 국적을 드러내기 전에 먼저 감각과 정서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이곳은 꾸준히 실천해온 셈이다.
갤러리의 이력도 주목할 만하다. 갤러리 까르찌나는 2021년 러시아 예술 아카데미와 협력 계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의 예술분야 초기기업 지원대상으로 선정됐다. 또한 2020년부터 국내 대관 전시, 기획전, 정부행사 등 다양한 형태의 전시를 다수 개최해왔다. 이런 경력은 까르찌나가 단기간의 이색 기획에 머문 공간이 아니라, 러시아 미술을 한국 미술 생태계 안에 지속적으로 소개해온 전문 플랫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갤러리의 가장 큰 특징은 러시아 미술을 낯선 외국 미술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까르찌나는 쿠가츠, 불가코바, 이조토프, 볼코프 등 15인의 러시아 작가 작품 25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풍경과 인물, 서정과 구조,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아우르는 작품군은 러시아 미술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보지 않게 만든다. 차갑고 무거운 역사적 이미지로 러시아를 떠올리기 쉬운 한국 관객에게, 까르찌나는 오히려 따뜻한 감정과 생활의 결을 품은 회화들을 통해 러시아를 새롭게 읽게 하는 통로가 된다.

현재 전시는 ‘Geometric Forms : 구조의 언어’다. 전시는 4월 8일부터 5월 30일까지 진행되며,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장소는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 87 성문빌딩 402호, 바로 갤러리 까르찌나의 상설 공간이다. 무료 전시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미술을 더 넓은 관객에게 열어두겠다는 태도가 일정과 운영 방식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김희은 갤러리 까르찌나 대표는 인사말에서 이 공간의 성격을 한층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는 러시아에서 21년간 일했고, 한국에서의 활동도 5년에 이르렀다고 밝히며,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예술은 그것을 초월하는 또 하나의 언어라고 믿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 문장은 까르찌나 갤러리를 이해하는 핵심 문장처럼 읽힌다. 정치와 외교, 국제 정세가 경색될수록 예술은 때로 가장 느리지만 가장 깊은 방식으로 타자를 이해하게 만든다. 까르찌나 갤러리는 바로 그 느린 이해의 시간을 관객에게 건네는 공간이다.

실제로 갤러리 까르찌나의 활동은 전시를 넘어 강연과 해설, 문화 프로그램으로도 확장돼 왔다. 이 갤러리는 러시아 그림 이야기, 문학과 회화를 연결하는 프로그램, 도슨트와 강연이 포함된 전시 등을 통해 관객이 작품을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까지 경험하도록 기획해왔다. 이는 작품을 단순히 벽에 거는 데 그치지 않고, 러시아 문화예술을 이야기의 형식으로 풀어내는 까르찌나만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성수는 지금 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감각이 재편되는 지역 중 하나다. 공장지대의 기억 위에 카페, 쇼룸, 전시공간, 브랜드 실험실이 겹겹이 쌓이면서 이 도시는 늘 새로운 취향을 시험한다. 그런 성수 한편에서 갤러리 까르찌나는 유행의 속도와는 조금 다른 호흡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이곳은 화려한 자극보다 천천히 들여다보는 회화의 시간을 제안하고,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 미술을 우리 일상의 감정 속으로 번역해 넣는다. 그래서 갤러리 까르찌나 탐방은 단순한 공간 방문이 아니라, 낯선 예술을 통해 오히려 더 깊은 인간적 정서를 만나는 경험이 된다.
이 갤러리는 지금도 성수에서, 그림이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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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탐방] 성수에서 만나는 러시아 미술의 또 다른 언어, 갤러리 까르찌나
임만택 기자 입력 2026.04.21 18:11 서울 성수동의 한 건물 4층에 자리한 갤러리 까르찌나는 공간의 규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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