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국화에 유머와 풍자를 입힌 21세기 풍속도
한국화 김현정 작가는 전통 한복과 현대인의 일상을 결합해 ‘21세기의 풍속도’라 불리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화가다.
2026년 병오년 말의 해를 맞아 제작된 달력 《내숭이야기》는 작가 특유의 해학과 풍자, 그리고 현대인의 감정이 12개월의 흐름 속에 담긴 작품집이자 작은 전시라 할 수 있다.

달력 표지에는 말을 중심으로 한 장식적 구성이 등장한다. ‘YEAR OF THE HORSE’라는 문구와 함께 병오년의 상징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전통과 현대, 동양적 감성과 서구적 장식성이 공존하는 김현정식 시각언어를 보여준다.
1월, 달려가馬 ― 새해의 온기를 향한 마음

1월 작품은 난로 앞에 앉은 인물이 등장한다. 차가운 계절 속에서도 따뜻함을 찾아가는 모습은 새해를 시작하는 인간의 마음과 닮아 있다. 작가는 ‘달려가馬’라는 언어유희를 통해, 새해의 출발이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위로와 온기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2월, 새해 복 받으馬 ― 청소기 앞의 현실적 새해

2월에는 청소기와 함께 선 인물이 등장한다. 새해를 맞아 정리하고 비우려는 마음, 그러나 쉽게 끝나지 않는 일상의 반복이 유머러스하게 표현된다. ‘복’이라는 전통적 인사말은 청소라는 현대적 행위와 만나며, 김현정 특유의 생활 풍속화로 확장된다.
3월, 시작하馬 ― 쇼핑백과 선물, 새로운 출발

3월 작품은 쇼핑백과 상자를 든 인물이 중심이다. 봄의 시작, 새로운 관계와 기대, 자신을 꾸미고 싶은 마음이 화면에 드러난다. ‘시작하馬’는 계절의 시작이자 마음의 재출발을 상징한다.
4월, 만우절에 속아주馬 ― 라면 앞의 솔직한 욕망

4월에는 냄비 앞에서 음식을 먹는 인물이 등장한다. 단아한 한복 차림과 라면이라는 일상적 소재의 대비가 웃음을 자아낸다. 작가는 품위와 욕망, 절제와 본능 사이에서 흔들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재치 있게 포착한다.
5월, 함께하馬 ― 놀이공원의 유쾌한 동행

5월 작품은 풍선과 놀이기구를 배경으로 한 밝은 장면이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하는 계절의 활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인물의 표정에는 단순한 즐거움만이 아니라 어딘가 어색한 긴장감도 함께 담겨 있다. 이것이 바로 김현정의 ‘내숭’이다.
6월, 선거하馬 ― 마트 진열대 앞의 애국적 소비

6월에는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는 인물이 등장한다. 작품 제목은 ‘애국자’로 읽히며, 소비 행위와 애국심이라는 다소 낯선 조합을 통해 현대 사회의 욕망 구조를 풍자한다. 장바구니에 가득 담긴 과자와 식품들은 우리 시대의 풍속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된다.
7월, 더위를 날려주馬 ― 영웅처럼 말을 탄 현대인

7월은 나폴레옹의 기마상 이미지를 패러디한 듯한 강렬한 작품이다. 말 위에 오른 인물은 한복과 현대적 복장을 동시에 걸치고, 아이를 안은 채 당당하게 전진한다. ‘더위를 날려주馬’라는 제목처럼 여름의 열기와 삶의 무게를 유쾌하게 돌파하려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8월, 다이어트하馬 ― 현실과 마주한 몸의 이야기

8월에는 체중계 위에 선 인물이 등장한다. 주변에는 먹거리와 흐트러진 옷가지가 놓여 있다. 작품은 현대인이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다이어트, 자기관리, 후회의 감정을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다이어트하馬’는 웃기지만 아픈 현실의 자화상이다.
9월, 좋은 시간 보내馬 ― 국화와 함께하는 고요한 계절

9월 작품은 국화를 배경으로 한 인물이 등장한다. 여름의 과잉이 지나가고, 가을의 차분한 정서가 화면을 감싼다. 장식적 배경과 단정한 인물은 김현정 작품의 한국화적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이 시기의 ‘내숭’은 욕망보다 성찰에 가깝다.
10월, 단풍 구경가馬 ― 명화 속으로 들어간 내숭

10월 작품은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키는 배경 앞에 선 인물로 구성된다. 단풍놀이의 즐거움과 내면의 불안이 동시에 표현된다. 작가는 서양 명화의 이미지를 차용해 한국적 인물과 결합함으로써,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시각적 풍자를 완성한다.
11월, 행운을 빌어주馬 ― 폭포처럼 쏟아지는 욕망과 기원

11월에는 커다란 상자에서 내용물이 쏟아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행운을 빌어주馬’라는 문구는 한 해의 끝을 앞둔 기대와 바람을 상징한다. 행운, 재물,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 과장된 이미지로 표현되며, 인간의 소망을 익살스럽게 보여준다.
12월, 선물 준비하馬 ― 산타와 말, 한 해의 마무리

12월 작품은 산타 복장을 한 인물과 작은 말이 끄는 마차가 등장한다. 연말의 선물, 나눔, 기대감이 밝고 유쾌하게 표현된다. 한 해 동안 이어진 ‘내숭’의 감정들은 이 장면에서 따뜻한 마무리로 수렴된다.
김현정의 《내숭이야기》, 웃음 속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
김현정의 작품은 겉으로는 밝고 유쾌하지만, 그 안에는 현대인의 복잡한 심리가 숨어 있다. 한복을 입은 인물은 전통적 아름다움을 상징하면서도, 스마트한 일상과 소비, 음식, 다이어트, 관계, 욕망 속에서 흔들리는 오늘의 우리를 대변한다.
2026년 달력 《내숭이야기》는 단순한 달력이 아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지는 작품들은 병오년 말의 해를 배경으로, 달리고 싶지만 망설이고, 감추고 싶지만 드러나는 인간의 마음을 월별 이야기로 엮어낸다. 김현정은 그 마음을 무겁게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웃음과 해학, 언어유희와 섬세한 한국화 기법으로 관람자에게 다가간다.
결국 김현정의 《내숭이야기》는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솔직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내숭’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달리고 있는가.

작가 소개
한국화가 김현정은 전통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기반으로 현대인의 일상과 심리를 유머와 풍자로 풀어내는 ‘현대 풍속화’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선화예술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석·박사)을 거치며 전통 회화의 정통성을 탄탄히 다진 그는, 이후 한지와 수묵담채, 채색기법을 활용해 동시대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재해석해왔다.
대표 연작 《내숭 이야기》는 단아한 한복 차림의 인물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실제의 감정’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작품 속 인물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음식을 먹고, 소비와 욕망 속에서 흔들리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현대인의 이중적 자아를 익숙하면서도 낯선 방식으로 보여준다.
특히 김현정 작가는 인물을 누드 상태로 그린 뒤 한지를 염색해 의상처럼 입히고, 수묵담채로 반투명하게 표현하는 독창적인 기법을 통해 ‘내면이 비치는 상태’를 시각화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전통성과 실험성을 동시에 담아내며, 한국화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장면을 통해 관람자에게 웃음과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그래서 김현정의 한국화는 감상되는 그림을 넘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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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탐방] 한국화가 김현정, 2026년 달력 《내숭이야기》로 풀어낸 ‘말의 해’와 현대인의 속
임만택 기자 입력 2026.05.06 07:43 수정 2026.05.07 13:18 한국화가 김현정은 전통 한복과 현대인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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